청년은 혼자 자랐다고 생각했다.
부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모에게서 정서적 경제적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부모는 스스로가 정서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돈을 넉넉하게 버는 직업을 가지지도 않았다. 게다가 부모는 서로 대화가 잘되지 않았다. 서로 위로해 주고 마음을 나누고 소소하게 웃는 장면, 자신의 감정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관계, 이 모든 것들이 청년에게는 부재했다.
청년은 경제적으로도 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 자랐다. 다른 아이들이 당연히 누리는 수학여행, 친구의 생일 파티, 새 옷을 입어보는 순간들이 하나씩 좌절될 때마다 청년은 거세게 저항도 하지 않았다. 다만 마음 깊이 좌절했다. 그 좌절된 마음을 인식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했다.
하나님을 안 믿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기도가 잘 안되네요.
그냥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잘 안 나요.
그나마 이 가족을 버티게 해줬던 것은 교회 생활이었다. 부모는 주일 예배, 수요예배뿐 아니라 새벽예배도 다녔다. 청년도 교회에서 자라며 교회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교류하며 지냈다. 주일학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경험이라도 없었으면 청년은 어린 시절에 대해 추억할 만한 것이 더 없었을지 모른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교회의 문화가 세상의 문화보다 덜 재미있지 않았던 시절이다.
하지만 청년이 진짜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청소년기부터였다. 청년은 하나님과 하나님 자녀의 관계라는 말을 처음으로 제대로 인식했다. 변하지 않는 관계, 무엇이든 말하고 구하고 얻을 수 있는 관계, 거리낄 것이 없는 관계,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관계라는 말에 하나님을 새롭게 알기 시작했다. 육신의 부모에게서 그 필요한 것을 넉넉히 얻은 것도 아니고, 거리낌 없이 마음을 나누는 관계도 아니었으면서 하나님과의 하나님 자녀와의 관계가 쉽게 이해되었다. 그때부터 청년은 말씀을 듣기 시작했다. 제자훈련도 받았다. 부모가 제공하는 환경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청년은 주일에 기도하고, 모임에서 기도했을 뿐 혼자 있을 때는 기도하지 않았다. 잘 생각이 안 났다. 인생의 문제를 주일 예배에는 다 해결 받은 것 같았다가 평일에는 힘들게 버텨내며 살았다. 주일에 결단하고 결심한 것들이 평일에 전혀 기억나지 않아도 그다음 주 예배를 기다리며 살았다.
그리고 청년은 상담 장면에서 알았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구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나누는 것이 힘들었는지. 청년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좌절감과 단절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구하라고 한 것들을 구하지 않았고, 응답은 다른 사람들의 것이었으며, 하나님께 마음의 상태도 심정도 고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의 능력치만큼, 자신이 할 수 있을 만큼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하며 살아왔다.
청년은 이 시점부터 참부모 되신 하나님을 다시 경험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소원도 구하고 하나님의 소원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안 되는 것도 솔직하게 기도하며 하나님이 치유하시기를 소망했다.